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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凡) 보수진영에 속한 바른정당 초대 최고위원으로 추대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최근까지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된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 1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링 위에서 내려왔습니다.
다만 오 최고위원은 최근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회동을 가진 데 이어 바른정당 내 대선주자들로부터도 지원사격 차원의 '러브콜'을 받는 등 킹메이커로서 주가가 오르는 추세입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반 전 총장과 바른정당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지, 반 전 총장 캠프로 들어갈지 그의 선택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기도 합니다.

율사(律士) 출신인 오 최고위원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시 26회(연수원 17기)에 합격했습니다.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부평 산곡동 아파트 일조권 소송에 승소하면서부터 입니다.

당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주변에서 강하게 만류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여 헌법상 환경권이 실질적 권리로 인정받는 첫 사례를 일구었습니다.
이후 오 최고위원은 '오변호사, 배변호사' 등 각종 TV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번듯한 인물과 훤칠한 키, 뛰어난 언변 등으로 '스타변호사'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승리, 금배지를 거머쥐었습니다. 
오 최고위원은 국회에서도 같은 당 원희룡, 남경필 등과 소장파모임인 '미래연대'를 만들며 일명 '오세훈 선거법'이라는 정치개혁 입법을 주도했습니다.

초선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차기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의 진까지 치면서 오세훈 선거법을 밀어붙여 '오고집'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17대 총선에 불출마했지만 대중적 인기는 사그러들지 않았고 당시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의 대항마로 서울시장에 출마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민선 시장 최초로 연임에도 성공하며 민관 통합 최장수 시장까지 노렸으나 2011년 직을 걸고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패로 끝나면서 시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여권 내 대선주자 기근 분위기 속에서 오 최고위원은 다시금 주목을 받았고 4·13 총선에서 '정치1번지' 종로에 출마해 화려한 복귀를 노렸다. 그러나 정세균 현 국회의장에 밀려 낙선하고 말았습니다.그후 서울 종로에 자리한 자신의 싱크탱크 '공생연구소'에서 "왜 지금 공존과 상생인가' 등 서적 집필에 매진하며 차분히 대선준비를 해왔지만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 킹메이커 등 다른 정치적 활로 모색에 나선 상태입니다.

△1961년 서울 출생 △고려대 법학 학사, 법학 박사 △26회 사법시험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 모임 환경위원 △숙명여대 법대 교수 △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33대 서울특별시 시장 △제34대 서울특별시 시장 △공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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